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잡담 |  흉부외과 1년차 파업 중 쓰는 뻘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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익명 작성일20-09-02 10:48 조회35회 댓글0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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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1년 전쯤에 응급실 인턴으로 펨코에 글 올린적 있습니다. 세월이 흘러 저는 기피과 중 기피과인 흉외 던트 1년차가 되었답니다.


 평소에 바쁘더라도 자기 전이나 식사 도중엔 무조건 펨코 눈팅하는 진성 펨붕이랍니다. 펨창분들 늘 재밌는 게시글 올려주셔서 고맙습니다. 덕분에 하루 중 잠시나마 웃을 수 있었습니다. 제 친구들도 거의 와고 아니면 펨코 하더군요. 

 많은 분들이 의사 파업에 대해 의견 주시는 것 감사하게 잘 보았습니다. 개중에는 분명히 의사가 비판받을 점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치글 분류되는 게 싫기때문에 그런 거 하나하나 지적하지 않고 오로지 현재 제가 느끼는 감정 위주로 적고자 합니다. 

 흉부외과 의사가 되고자 한 건 '뉴하트' 뽕에 취해서였습니다. 바이올린 선율의 브금이 켜지고, 긴박한 상황에서 배우 조재현 씨와 지성, 김민정 그리고 그 외 무수히 많은 조연들이 심장 수술을 진행하는 장면에서 전율을 느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중학생 때인지 자세한 시기는 기억나지 않지만 어쨌든 '나도 꼭 저 소속이 되어 일하고 싶다' 는 생각이 커졌습니다. 

 여차저차 의대에 들어와 보니 너무나 방대한 공부량에 눈앞이 아득해졌습니다. 가뜩이나 공부 잘하는 애들 모아놓았는데 걔네들끼리 경쟁을 시키니까 진짜 말도 안되는 피지컬들이 등장하더군요. 이를 테면 그냥 잠자는 시간 외에 공부만 하는 애도 있었고 시험 하루 전에 슥 보면 다 기억하는 애들도 있었습니다. 그 친구들을 보면서 늘 경외심, 부러움, 때로는 질투 따위의 감정들을 느끼면서 의대 시절을 보냈습니다. 

 학생때는 순환기내과 파트가 참 재밌었습니다. 딱히 별 이유는 없는데 심장 관련 교수님들이 엄청 멋있어 보이더라구요. 이전부터 흉부외과가 어느 정도 머리속에 있어서 그랬을 수도 있을 것 같습니다. 

 인턴 때 욕도 참 많이 먹고, (특히 정형외과 선생님들한테...  아이러니하게도 그 선생님들하고 지금은 잘 지내는 편입니다) 신기한 경험도 많이 하고, 안타까운 사연도 많이 보고, 인턴 특성상 많이 마주치기 때문인지 간호사 선생님들과의 마찰도 꽤 많았습니다. 

 올 3월, 흉부외과 1년차가 되고 처음으로 느낀 게 "아, 이거 장난 아니겠다" 였습니다. 처음으로 제가 받은 콜이 개심술 후 심방세동으로 심박수 160까지 치고 올라간다는 거였는데, 혹시 환자가 잘못될까봐 제 심장이 후덜덜하고 약 주는 것도 너무 두렵더군요. 

 짧지만 긴 시간, 5-6개월 동안 퇴근 시간 외에는 환자 생각만 하고 살았습니다. 폐동맥색전증으로 거의 시체상태로 응급실로 와서 ECMO 하고 응급수술 했던 환자가 20일쯤 뒤에 멀쩡하게 살아서 감사합니다 하고 퇴원할 때 너무 벅차더군요. 심장성 쇼크로 CPR 치면서 응급실 온 환자가 심장이식 받고 살도 홀쭉해져서 '죄송한데, 선생님이 누군지 기억이 안 나네요' 라고 저에게 말해줄 때도 환자에게 너무 고마웠습니다. 참고로 기억이 안 나는게 당연한 것이, 저는 중환자실에서만 환자를 봤기 때문에 환자는 거의 잠든(얕은 진정 단계) 상태였습니다. 

 곱씹어보면 하루가 부족할 정도로 환자들에 대해서 수다를 떨 수 있는데, 생각해보면 이제는 어쩌면 저는 '흉부외과' 이기 때문에 당연히 해야하는 일이라 생각되어서 친구들 앞에서도 크게 재밌거나 드라마틱한 에피소드가 아니면 이야기를 잘 안하는 편입니다. 그건 다른 과를 하는 친구들도 마찬가지겠죠. 다들 자신의 업에 충실히 살고 있는 거고, 누가 알아주지 않아도 이제는 본인이 스스로에게 채찍질하고, 자랑스러워하고 하는 거라고 생각합니다. 

 사실 어떻게 파업을 시작하였는지도 기억이 잘 나지 않습니다. 처음 파업하는 날에도 제 기억으론 환자들 마무리를 좀 하고 간다고 총회 장소에 조금 늦게 갔습니다. 그 때 아는 다른 교수님이 저보고 왜 파업 안가냐고, 너 혹시 프락치냐고 농담을 건넸던 기억이 있네요.

 첫 시작때는 솔직히 반신반의 했습니다. 파업을 하는 건 좋은데, 중환자실 응급실 인력은 좀 남겨놓고 해야하지 않을까? 하는 온건파 입장이었습니다. 뭐 당연히 이런 생각을 하는 선생님들도 초반에는 좀 많았고, 이 사람들이 막 사명감이 뛰어나다, 착하다 뭐 이런 게 아니라, 그냥 뭔가 그래야 될 것 같아서.. 였을겁니다. 내 이름으로 된 환자를 뒤로 남겨두고 나올려니 뭔가 찝찝한 느낌? 그 이상 설명할 방법이 없네요. 

 그런데, 파업 지속하는 동안 여러 일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동안 제 생각도 완전히 바꼈습니다. 글쎄요... 분노 라는 단어 외에 적당한 단어가 생각나지 않는군요.

 기피과, 기피지역 타겟으로 한 정책인데, 초기피과 의사로서 진정으로 나라에서 해줘야 하는 일은 사람을 늘리는 것보다, 돈을 더 많이 줘야 합니다. 우리 월급을 늘려달라는 게 아니고, 그냥 심장수술비용 자체를 올려야 합니다. 한 번 수술할 때마다 들어가는 인력만 10명 내외인데, 특수한 수술 이외에 일반적인 수술들(이것은 비단 우리과 뿐만 아니라 대다수의 과들이 그렇습니다) 여전히 싼 값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놀랍게도 이 부분은 이제는 일반인들도 너무 잘 알고 있습니다. 따로 더 짚지는 않겠습니다.

 또한 한약이 왜 급여화가 되는건지??? 이건 진짜 졸속 행정 끝판왕입니다. 저희 수술 중에도 지혈제나 지혈거즈, 수술이 아닌 경우 각종 약들이 비보험 항목 또는 심평원 제제 항목이라 눈치 보면서 써야됩니다. 수술 끝나고 환자가 메스껍다고 해서 mecperan (메스꺼움약) 이라는 걸 주고 있었는데 5일뒤에 문자가 오더군요. 5일 이상 멕페란 주면 삭감대상이라고...   궁시렁거리면서 다른 약 찾아봤던 기억이 있습니다. 효능이 입증된 약도 전부 급여화가 안 됐는데 효능이 입증이 안 된 한약제제를 왜 급여화하는 겁니까? 번외로 한의사한테 침 맞고 농흉걸린거 뻥안치고 1달에 1-2번씩 봤습니다. 이 환자들이 애초에 침을 안 맞았다면 중환자실을 왔다갔다 하고, 흉관꼽고, 심하면 폐박피술까지 받아야 했을까요? 이런 부가적인 의료비 손실에 대해서는 정치인들은 모두 함구하고 있습니다. 

 이걸 알고 있는데도 의료전문가, 특히 기피과 의사들과는 단 한 마디의 상의도 없이 행정처리를 해버리니 분노할 수 밖에요. 이건 밥그릇싸움이 아니고 (애초에 흉부외과에 밥그릇이 어딨나요ㅜㅜ) 정부에 대해서 얼척이 없는 겁니다. 코로나 창궐 하고 입국금지 하라고 했는데 기어이 열어놓더니 이제는 깜깜이 환자가 계속 늘지 않습니까? 그런데 코로나 시국에 파업하는 건 히포크라테스 선서를 어기는 행위랍니다. (심지어 대통령이 한 말... ) 이건 무슨???? 

 제가 제일 화나는 건 환자 생각을 하고, 공부를 해야할 시기에 정치 생각을 한다는 겁니다. 저도 빨리 제 부족한 부분을 채우고 환자들을 보고 싶습니다. 이건 저 뿐만이 아니라 모든 전공의들이 그럴 겁니다. 또한 정부 행태에 질렸다면서 미국이나 일본으로 떠난다는 친구들도 있습니다. 어렵게어렵게 만들어놓은 기피과 전공의들을 떠날 생각을 하게 된 건 누가 그렇게 만든 걸까요... 정책 철회만 하면 되는 것을 이다지도 질질 끌고 있다니 너무 개탄스럽습니다. 제발 저희에게 환자만 편하게 볼 수 있는 심적 평안을 주세요... 

 아 술도 안먹었는데 이리저리 생각도 정리 안되고, 글도 매끄럽게 잘 안 써지네요 하하하 요즘 이슈니까 이슈갤에 올려도 되겠져? 먼가 글이 그라데이션 분노같은데... 긴 글 읽어주신분들은 너무 감사드립니다. 사실 인터넷 조금만 찾아봐도 나오는 내용이라서 별로 새로울건 없습니다ㅜㅜ 걍 푸념해봤네요 다들 수고하세요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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